Private Awakened During The War - 322 322 denominations
잠잠하던 호엔이 무겁게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무슨 능력을 사용한 것인가. 무슨 능력을 사용했길래 내 심장이 회복되지 않는 것이지?”
“…심장이 꿰뚫린 게 맞구나. 그런데 그런 것 치고는 너무 멀쩡해 보이는군.”
예상치 못한 호엔의 말에 한줄기 희망이 솟았다.
정말로 심장이 꿰뚫린 게 맞다면 멀쩡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쓰러지기 직전이라는 소리가 아닌가.
도망치려던 움직임을 멈추고 녀석을 주시했다.
“크큭, 내가 케비런이라는 사실과 약점이 빛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케비런의 회복 능력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건가?”
“회복 능력? 트롤도 심장이 부서지면 버티지 못하는데 수인족은 다르다는 거냐? 그만 버티고 쓰러지는 게 어때?”
녀석과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주변을 돌았다. 혹시라도 녀석의 말과 달리 몸이 멀쩡한데 나를 속이려는 것일 수도 있으니.
언제든 도망갈 준비를 마치고 효과가 끝나가는 거울아 대신 새로운 거울아를 꺼내든 리에카에게 신호를 보냈다.
“리에카, 만약 녀석이 멀쩡한 게 아니라면 이건 기회야. 혹시 주변에 다른 아스티아 녀석들이 있는지 확인해 봐.”
제가 아까 전부터 아티팩트로 확인하고 있지만, 지금 평원 주변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없어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계속 확인해 볼게요!
내가 녀석을 주시하며 원을 한 바퀴 돌았을 때.
“쿨럭! 크흐… 그분에게 면목이 없군. 이렇게 어이없이 당할 줄이야.”
호엔이 방금 전보다 더 격하게 피를 토하며 한쪽 무릎을 굽히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녀석은 나를 신경 쓰지 않는 건지 강렬하게 빛이 쏟아지는 하늘을 쳐다봤다.
‘지금? 아니야… 조금 더 기다려 보자.’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녀석의 빈틈을 노리고 달려들어 검을 꽂아 넣고 싶었지만, 숨을 크게 쉬고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녀석이 아무리 빛에 의해 약해지고, 내 공격에 심장이 꿰뚫렸다고 해도 위험한 건 변하지 않는다. 특히 비장의 스킬을 모두 사용하고 황금 주사위의 사용 시간까지 끝나 버린 지금은.
“크크, 그렇게 경계할 거 없네. 나는 빠른 속도로 죽어 가는 중이니까. 뭐, 그대가 나를 이대로 보내 준다면 살아날 수도 있겠지만…”
잠시 말을 멈춘 호엔이 내 두 눈을 빤히 바라봤다.
“그대는 그럴 생각이 없지 않은가.”
“…당연한 소리를 하는군. 그래도 의외야. 순순히 패배를 인정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거든.”
“그대가 무슨 방법을 사용한 건지는 모르지만, 내가 너무 방심했던 것이지. 아니, 자네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생포한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됐던 거 같군.”
정말 죽어 가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무감각한 녀석의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바리안 녀석도 그랬지만, 내가 호엔에게 한방 먹여 줄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녀석들이 나를 생포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녀석들이 나를 죽이겠다고 마음먹었다면….
‘…레플랙사에게 고마워해야 할 날이 올 줄이야.’
인정하기 싫지만 대마법사는 내게 안전장치 같은 존재다. 녀석이 멀쩡히 살아 있는 이상, 폭주한 실험체를 제외하고는 나를 죽일 수 있는 녀석은 없다.
그들이 내 몸속에 있는 행운의 신성을 원하는 이상은.
“카이얀. 죽기 전에 물어보고 싶은 게 몇 개 있네. 내가 그대에게 질문을 해도 괜찮겠는가.”
이제 슬슬 거리를 좁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호엔이 내게 물었다.
혹시 녀석이 몸을 회복하기 위해 시간을 끄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지금도 꾸준히 파란 피를 뿜어내는 상처 부위를 보니 그건 아니었다.
그에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는 보도록 하지.”
“크큭! 고맙군. 그럼 그대에게 묻겠네. 내 심장을 찔렀던 하얀색 창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게 무엇이길래 내 종족인 케비런의 회복 능력이 발동하지 않는 건지 궁금하네.”
“하얀색 창? 그건…. 잠깐! 그 말은 설마 케비런은 부서진 심장까지 회복할 수 있다는 소리냐? 그 정도의 회복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반은 맞고 반은 맞네. 나의 종족은 엄청난 회복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건 심장만 해당하는 이야기이지. 내 몸을 보면 알지 않은가.”
호엔의 말에 녀석의 몸을 유심 있게 살피자, 확실히 처음 나와 수백 번의 공격을 주고받으며 생긴 상처에서는 아직도 미세하게 피가 뿜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정말로 녀석에게 부서진 심장을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냐는 것.
그리고 정말로 그 능력을 지금 사용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미안하지만 대화는 끝이다. 네 녀석이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있을지 모르는데 계속 지켜보는 건 불가능해.”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오러를 최대로 뽑아내며 호엔에게 한 걸음씩 다가갔다.
저벅저벅.
“반응을 보니 그대도 이유를 모르는 것 같군. 그렇다면 자신도 모르는 신기한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건가?”
“죽기 전이니까 말해 주는 거지만… 뭐, 비슷해. 사실 나도 아직 내 능력에 대해 전부 아는 건 아니거든.”
땅에 무릎을 굽히고 있음에도 나와 눈높이가 똑같은 호엔을 쳐다보며 검을 강하게 쥐었다. 이제 검을 무방비한 녀석의 머리에 휘두르기만 하면 끝이다.
“그렇군. 과연 그분께서 그토록 그대를 보고 싶어 하시던 이유가 있던 것이었어. 내 질문에 대답해 줘서 고맙네.”
녀석은 팔만 휘둘러도 닿을 거리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서 죽이라는 듯이 두 눈을 감았다.
정말이지 바리안 장로 때를 생각하면 그때와는 너무도 다른 태도다. 호엔과의 전투는 내게 명예로운 기사들끼리 대결을 한 듯한 느낌을 주었다.
“…정말 끝까지 이상한 녀석이군. 수인족은 모두 포악하다고 들었는데 널 보니 아무래도 그건 틀린 거 같다.”
“크크, 모두 그분의 은총 덕분이네. 나 또한 그분을 만나기 전까지는 한 마리의 짐승에 불과했지.”
“바리안도 그 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넌 꼭 레플랙사를 신처럼 숭배하는구나. 수인족이 멸망한 건 그 녀석 때문이 아니었나?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거지?”
마지막까지 레플랙사를 찬양하는 녀석의 목에 검을 가져다 대고 물었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수인족이 멸망한 이유는 종족 전쟁 때문이었고, 전쟁이 일어난 이유가 레플랙사 때문이라는 사실을 아스티아의 장로가 모를 리가 없을 텐데.
“그대도 언젠가는 그분을 만나게 될 것이네. 그때가 되면 알 수 있겠지. 어째서 내가 그분을 따르는… 쿨럭!! 이런… 이제 더 이상 버티지는 못하겠군. 이제 그만 끝내게.”
호엔이 고통스러운지 오른손으로 울컥울컥 피가 뿜어지는 상처를 부여잡았다.
녀석은 목숨에 미련이 없다는 듯이 내게 어서 끝을 내라며 내 눈을 한번 쳐다보고 눈을 감았다.
가만히 둬도 죽을 것 같은 녀석의 모습에 잠시 망설이다 검을 굳세게 쥐고 앞으로 내뻗었다.
“…그래, 잘 가라.”
푸욱!
“드, 드디어 지긋지긋했던 삶이 끝나는군… 그래도 그분께서 약속을 지키실 테니 미련이라면…”
머리에 검을 꽂아 넣자, 잠시 두 눈을 크게 뜬 녀석이 지금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밝은 미소를 지은 채 땅에 쓰러졌다.
띠링! [레벨업 하셨습니다]
띠링! [100레벨 돌파 선물이 보관함에 전송됩니다]
녀석이 확실하게 죽었다는 증거나 마찬가지인 레벨업 알림.
조금 씁쓸한 미소를 지은 채 호엔의 머리에 박혀있던 검을 뽑아냈다.
“나쁜 녀석이면 나쁜 녀석답게 행동할 것이지…”
목표했던 대로 호엔 장로를 쓰러트렸지만 마음이 찝찝했다. 꼭 내가 나쁜 놈이 된 기분이 들어서.
카이얀 님! 정말로 녀석을 쓰러트리신 거예요?
“그래, 그러니까 이제 그만 내려와도…”
찝찝한 기분에 자리를 이동하려는 순간.
“크윽!”
카이얀 님?
“이, 이건… 행운의 신성?”
죽은 호엔의 육체에서 신성 조각이 내게 흘러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가미안과 파니벨룬에서 모았던 신성에 비하면 훨씬 커다란 크기를 가진 조각이.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녀석의 기억 일부가 머릿속에 파고들 듯 떠올랐다. 호엔 장로가 아스티아의 장로가 되기 전과 레플랙사를 만났을 때의 기억들이.
“끼루룻!!”
[카이얀 님!! 괜찮으세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녀석의 기억을 관찰하고 있을 때 하늘에서 리에카와 바람이가 내려왔다.
둘은 인상을 찡그린 내가 걱정됐는지 가까이 다가오려고 했지만 손을 들어 그들을 멈춰 세웠다.
“…잠시만. 어쩌면 레플랙사 녀석에 대해 무언가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잠시만 기다려.”
머릿속에 떠오른 기억은 호엔 장로의 기억 중 일부에 불과했지만, 녀석이 살아온 세월이 길다 보니 그 양이 다른 이들의 기억에 비해 방대했다.
호엔이 아스티아의 장로가 되기 전의 기억, 호엔이 아스티아의 장로가 된 후 전쟁으로 죽어가는 동족들을 지켜보던 기억 등등.
호엔의 기억을 확인할수록 그때 녀석이 느끼던 감정이 내게도 전해졌다.
‘…그랬군. 녀석도 후회하고 있던 거야. 동족을 버리고 아스티아에 들어간 자신의 행동을.’
호엔이 종족 전쟁으로 수인족을 몰살시킨 레플래가를 따랐던 건 그에게 두 가지의 선물과 한 가지의 약속을 받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전쟁에서 무더기로 죽어 나가는 동족들을 보며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다.
“수인족의 포악한 성질을 없애기 위해 레플랙사를 따르다니… 멍청한 선택이었어.”
호엔이 레플랙사에게 받은 두 가지 선물은 빛이 없는 공간에서 더욱 강해지는 케비런 종족 특성의 강화와 수인족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을 포악한 성질을 없애는 것이었다.
그리고 레플랙사는 호엔에게 대전쟁이 끝나면 자신과 마찬가지로 포악한 성질을 없앤 새로운 수인족을 부활시켜 주기로 약속했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포악함을 없애기 위해 그 녀석을 따르다니?]
“…호엔은 인간을 부러워했던 거 같아. 그는 수인족이 인간과 같아지기를 원했던 거지. 참… 바보 같은 녀석이야. 꼭 인간이라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닌데.”
그의 기억과 감정 일부를 가지고 있기에,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었다. 녀석은 동족애라고는 몬스터 수준 밖에 안 되는 수인족을 보며 인간을 부러워했던 것이다.
참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강한 육체와 영리한 머리를 지니고 있는 수인족이 그들보다 한참이나 약해 빠진 인간을 부러워하다니.
“….”
잠시 멍하니 바닥에 쓰러진 호엔을 쳐다보다 손바닥을 그의 머리에 올렸다.
“그런 선택을 했다면 최소한 후회는 하지 말았어야지.”
화르르륵!!
심장에서 빠져나간 불길이 호엔의 몸을 불태웠다. 다행히 심장이 꿰뚫리면서 녀석의 힘이 빠져나간 덕분인지 죽은 육체를 불태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잠시 거세게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다 시선을 돌리자, 리에카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은 채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런 표정이야? 전투에서 이기고 레벨업까지 했는데. 거기다 예상치 못한 신성 조각까지 얻었고.”
[그게 아니라… 조금 아까워서요.]
“아깝다고? 뭐가?”
[저렇게 강한 수인족의 시체를 행운의 보따리에 넣으면 무엇을 줄지 기대했거든요.]
“…녀석은 아스티아의 장로치고 괜찮은 녀석이었어. 이렇게 보내 주는 게 맞아.”
죽은 호엔이 리에카의 말을 들었다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필사적으로 도망치지 않았을까.
“그런데… 조금 궁금하기는 하네. 생각해보면 촉수 괴물의 부서진 핵을 넣고 블링크 아티팩트를 받았었는데.”
[그러니까요! 그보다 몇 배 아니! 백 배 이상 강한 호엔 장로라면 얼마나 대단한 걸 주겠어요!]
동화 속에 나오는 악마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리에카가 아닐까.
귓가에 파고드는 달콤한 속삭임에 나도 모르게 호엔의 몸을 불태우던 불길을 끄기 위해 손을 내밀다 멈칫했다.
내가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이었단 생각에. 아무리 그래도 명예롭게 전투를 치르고 죽은 상대의 시체를 이용할 생각을 하다니.
“…불길을 너무 세게 했나. 이미 대부분 타 버렸는데?”
그런데 난 그런 인간이었다.
[아아! 늦었어요! 정말 좋은 재료였는데…!]
“엘릭서라도 부어 볼까?”